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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의 로망
크리스마스 이브 때가 되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 마음은 설레이고, 무엇인가를 향한 그리움이 솟아나고, 어떤 애타는 욕구를 충족하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70년대의 청소년기에 이대 앞에서 또는 광화문 등지에서 친구들과 만나 왁짝거리며 장난을 치다가, 아주 근사하게 크리스마스 이브 밤을 보내자는 데에 의기투합하여, 어느 한 친구의 집에 몰려가 밤을 새우기로 했는데…
그 친구 집에서 막상 우리 친구들이 한 짓은 '고스톱'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은 늘 그렇게 '악케나쿠(呆気なく: 싱겁게, 맥없이)' 끝나곤 했습니다.
1980년대 말의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때는 기(奇)라는 친구와 함께 성탄전야를 보내게 되었는데,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어떤 갈증 때문에, 명동성당 근처에서 그 친구와 만나 밤을 새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려 했습니다.
그 채워도 채워도 안 채워지는 갈증이란 게 '시아와세(幸せ : 인간의 행복)'에 관한 것인지 인간의 '스쿠이(救い : 구원)'에 관한 것인지, 잘 알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그 언저리에 맴돌고 있는 그 무엇(가와키=渇き : 목마름) 같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도, 명동성당 근처에 있는 다방에서 커피나 홀짝거려 마신 후, 늦은 밤 돌아갈 교통편을 걱정하며 그 친구와 헤어졌던 기억이 납니다. 역시 용두사미였던 것입니다.
1990년대는 일본에서 살던 시대. 아내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둔 채, 성탄절 때마다 어느 다락방 같은 데서 꺼내어, 점등하여, 아이들과 함께 케이크를 자르며 성탄 축하송을 부르게 했습니다. 가족과 함께였으니 즐거운 '히토토키(一時 : 한 때)'이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의식적(儀式的)인 가족행사라는 '간(勘 : 감)'이 있어, 필자의 무엇인가를 향한 애타는 어떤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역시 역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도대체 그 욕구와 갈증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고상한 말로 포장하여 말하면 크리스마스 이브의 어떤 로망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필자는 분명 어떤 원천적인 것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좀 피상적인 이야기이기는 합니다.
그것이 좀 구체적인 이야기로 표현되면 인간의 행복에 관한 것, 자기구원을 이루는 법 등일 수도 있겠으나, 필자는 크리스마스 이브 때 쯤이면 더욱 그 쪽으로 '오모이오 하세테 이루(思いを馳せている : 생각을 달리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 그냥 산타클로스의 실재(実在)를 믿고자 하고 있는 어린이들에게는 선물을 기다리는 게 크리스마스 이브의 로망일 수 있겠네요.
아이들이 성장하며 '산타의 로망'이 깨질 때는, 즉 어른이 되어서는 다른 로망이라도 갖는 게 그래도 좋질 않을까요?
그것이 현실적인 직업상의 로망(희망)이 되어도 좋고, 원천적인 향수가 되어도 좋고….
행복 ----정신적이거나 물질적이거나---- 에 관한 것이어도 좋고, 인간의 구원 ----자기구원이거나 사회구원이거나---- 에 관한 것이어도 좋고….
필자도 그래서 지금도 '고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성탄절의 로망을 간직한 채, 크리스마스 이브를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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