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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 '동양의 마녀' 미야모토 에미코(宮本恵美子) 지다
1964년 도쿄 올림픽 여자배구에서 금메달을 차지해 「동양의 마녀」라고 불린 일본 대표팀의 주력으로 활약했던 미야모토 에미코(宮本恵美子=테라야마 에미코・寺山恵美子)가 12월 7일 오전, 패혈증으로 사망했습니다. 12월 10일 15:50 니혼게이자이 신문 보도로 알려졌습니다. 향년 86세.
'히다리키키(左利き : 왼손잡이)'로서 日 대표팀에서 에이스 어태커로 맹활약한 미야모토 에미코는, 단신(172cm)이면서도 높은 점프에서 초(超)강력 스파이크를 꽂아넣으며 일본여자배구팀이 도쿄올림픽(1964년)에서 우승하는 데 크게 공헌했습니다. 그야말로 '동양의 마녀(東洋の魔女)'의 대표격(格)인 존재였지요.
올림픽 2년전의 1962년에 열린 세계선수권에서도 왼손잡이 에이스 공격수로 대활약, 일본의 우승에 크게 기여해 최우수선수(MVP)가 됐었습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단신(165cm) 공격수---- 날으는 작은 새---- 조혜정(曺惠貞)과 비슷한 이미지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에미코는 은퇴 후는 이바라키현(茨城県)에서 배구지도자로서 종사해 왔습니다.
미야모토 에미코가 저런 불멸의 업적을 이룬 데에는 다이마쯔(大松博文) 감독의 맹 훈련에 단련되며 흘린 땀과 눈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당시 日 대표팀 감독이었던 다이마쯔 히로후미(大松博文, 1921~1978)는 가혹한 스파르타식 지옥 훈련----심야・미명에 이르기까지 훈련을 부과---- 으로 악명을 떨치기도 했으나, 1964년 도쿄올림픽을 우승시키면서 일본의 영웅이 되었고, '동양의 마녀'를 키워낸 지도자로서 전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그 인기를 바탕으로 정치가로 전신(転身), 중의원(衆議院) 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정치활동 후에는 다시 배구계로 돌아왔지요.
다이마쯔는 한국 배구선수들의 지도차 한국에도 다녀갔으며, 특히 중국의 2인자였던 주은래(周恩来)의 초청으로 중국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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