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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네오포퓰리즘)과 파시즘의
유사점과 차이점
정치학의 여러 개념들 중에 포퓰리즘과 파시즘처럼 우리사회에서 각광(?)받는 논의도 없을 것이다. 과거 80년대에는 군부권위주의 체제를 파쇼체제로 정의하면서 비판했고 또 최근에는 노무현정부를 포퓰리즘적 정부로 이야기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인구에 회자되는 개념이지만 정작 각 개념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합의는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하에서는 먼저 각각의 개념들에 대한 정리를 시도한 후, 두 개념들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밝히도록 하겠다.
1. 파시즘에 대한 논의들
파시즘에 관한 이론 중 대표적 논의라 할수 있는 코민테른의 논의와 구동독에서의 논의에 대해 간략히 살펴본다.
1-1 코민테른
코민테른의 파시즘 해석은 사회 파시즘론과 반파시즘 인민전선론으로 나누어 살펴볼수 있다. 하지만 두 이론 모두 공통적인 것은 파시즘을 제국주의식으로 자본주의 최후의 단계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파시즘의 등장은 스스로 지배를 유지하기 힘들게된 지배계급(독점자본)이 광범위한 테러를 통한 독재체제의 구축이라는 것이다.
먼저 사회 파시즘론을 살펴보면 이는 1924년 9월 스탈린의 테제로 대표된다. ----“파시즘은 부르주아의 투쟁조직체이고, 이 조직체는 사회민주주의의 적극적인 지지에 의지한다. 사회민주주의는 객관적으로 파시즘의 온건한 분파이고..... 이러한 조직체들은 서로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상호간에 보충적이다. 이들은 대척자가 아니고 쌍둥이 형제들이다.”
이와같은 사회 파시즘론에 따라 공산당의 주적은 사회민주당으로 설정이 되었다. 즉 사회민주당이 붕괴해야할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반공(反共)적 성격을 띠기 때문에 파쇼체제라는 것이다. 사회 파시즘론에서 파시즘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있어서 필연적 과정이었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그 어떠한 체제도 모두 파시즘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결국 사회 파시즘론속에서는 파시즘의 등장은 곧 자본주의 붕괴의 사전지표로서의 역할도 담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파시즘론은 파시즘이 그 내적모순으로 자연스럽게 붕괴하리라는 오판과 사민당과 나치를 동등하게 바라봄으로써 파시즘의 특수성을 간과하는 오류를 저질렀다.
다음은 반파시즘 인민전선론에 대해 살펴보자. 반파시즘 인민전선론은 1933년 13차 집행위원회 총회에서 디미트로프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는 사회 파시즘론을 비판하면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광범위한 반파시즘 인민전선’ 이라고 하면서, 파시즘에 의한 권력장악을 "하나의 부르주아 정부와 다른 부르주아 정부의 일상적인 교체가 아니라 부르주아 계급지배의 한 국가형태인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또하나의 형태인 공공연한 테러독재의 교체"로 이해했다. 이러한 디미트로프의 파시즘 규정은 사회 파시즘론의 한계를 일정정도 극복하지만 근본적인 파시즘 이해의 한계-파시즘은 독점자본의 대리인이라는 인식-를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코민테른의 파시즘은 결국 자본의 도구로서 자리를 잡는다. 특히 대자본의 이해를 반영한 대리인이 파시즘이기 때문이 이 이론이 적실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독일의 경우 대자본과 나치당의 연결고리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즉 대자본의 요구에 의해 나치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는 명제가 증명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독일의 대자본이 파시즘 체제의 생성에 어떤 영향을 주도적으로 행사했다는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또한 이러한 이론의 가장 큰 결점은 앞서 언급했지만 파시즘의 권력장악은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용이하게 하리라는 잘못된 전제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결국 파시즘에 대한 이러한 오해는 현실속에서 히틀러정권의 등장을 막지못하는 치명적 결과를 불러온다.
1-2 구동독의 연구
구동독의 파시즘 연구는 고스바일러와 오피츠가 대표적이다. 먼저 고스바일러의 견해를 살펴보면 파시즘은 제국주의의 극단적인 최후의 귀결로써 이해된다. 즉 제국주의 하에서 금융자본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독점이윤을 확보해야하는데 의회민주주의는 저항세력에게 저항의 여지를 확보해주기 때문에 폭력적인 파시즘으로의 진행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경제공황으로 인해 독점자본은 바이마르공화국을 파괴하고 파시즘을 이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스바일러의 이러한 해석은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고스바일러의 해석은 여전히 디미트로프의 해석의 연장선상에 있다. 즉 고스바일러의 견해에는 소수의 독점자본가가 파시즘을 육성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대자본의 직접적인 후원과 지지가 파시즘의 대두를 추진시켰다는 경험적 연구는 발견되지 않는다. 또한 그의 견해에 따르면 나치당은 독점자본의 도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파시즘이 불러온 대재앙을 바라볼때 그것이 모두 독일 독점자본과 이해를 같이하고 있었다고 결코 이야기 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의 정의에 의하면 파시즘과 다른 폭력적인 권위주의 정부와의 구분이 불분명해진다. 즉 파시즘과 군부독재체제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은 대중동원의 여부라 할수 있을 것인데 고스바일러의 정의에는 대중동원의 부분은 파시즘에 있어서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2. 파시즘 등장의 배경과 특징
1929년에 시작된 세계 대공황은 모든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를 파산으로 몰고갔다. 국민대중은 불안과 절망속에서 기존정치세력들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어 갔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파시즘은 그 세력을 넓혀간다. 즉 국민들의 이러한 불안과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는 기대속에서 무능력한 의회민주주의의 폐기와 적을 제거할수 있는 강력한 국가의 수립, 계급투쟁을 조장하는 노동운동의 탄압, 공산주의의 위협의 제거, 외국인(유태인)의 제거 등을 내세우며, 파시즘이 전면에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나치당의 강령은 언뜻보면 사회주의정당으로 오해할만큼 반자본주의적 요소를 품고 있었다. 독점화된 기업의 국유화, 토지개혁등 그 강령의 세부내역은 좌파정당이라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분명 파시즘은 이후 독점자본의 이익에 복무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파시즘의 등장을 살펴보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것은 앞서살펴본 것처럼 선정적인 문구과 좌파적 강령등을 통해 강력한 대중동원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한편 지배계급의 입장에서도 경제위기는 파시즘과의 동맹을 불러온 계기였다. 즉 경제위기하에서 대중의 불만이 쌓여가는 가운데 기존의 의회민주주의는 그 기능을 상실하고 있었고, 지배계급에 필요했던 것은 노동운동의 분쇄와 자신들에게 유리한 권위주의 국가의 수립이었다. 파시즘은 노동운동과 공산당에 반대하고 대외팽창정책을 주장하는 등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충분히 동맹이 가능한 존재였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등장한 파시즘은 강력한 테러독재 체제였으며 조직화된 대중을 기반으로하여 대중의 강력하고 지속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한 독재체제였다.
즉 파시즘은 경제위기 하에서 강력한 대중의 동원과 지지를 통해 부상하기 시작하였고 지배계급의 추인을 통해 집권에 성공할수 있었던 것이다.
3. 포퓰리즘의 등장과 특징
포퓰리즘의 기원에 대해서는 1880년대 미국의 인민당(populist party)의 농민중심적 정책과 러시아의 나로드니키운동 즉 농민공동체운동에서 찾을수 있으며 남미에서의 경험을 이야기 할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포퓰리즘에 대해 흔히 우리사회에서는 ‘대중영합주의’로서 이해하고 있다. 즉 정치지도자들이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선심적 정책을 남발하고 그들의 대중을 선동하는 정치형태를 포퓰리즘으로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는 대의민주주의하에서 정치가가 자신의 지지율을 제고하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대중에게 영합하려 하는 것은 피할수 없는 일이라 볼 수 있기 때문에 포퓰리즘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고 할 수는 없다.
보다 엄격하게 포퓰리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포퓰리즘의 등장 배경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포퓰리즘의 등장배경은 무엇보다 장기불황으로 인한 실업의 증가를 이야기 할수 있다. 특히 근래에 서구유럽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는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의 모습을 이러한 배경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1970년대 이후 장기화하고 있는 경제불황속에서 실업률이 치솟고 이에 대해 기성정당들이 대량실업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바로 포퓰리즘 등장의 토양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불황의 상황이 그 자체로 포퓰리즘을 낳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즉 경제위기는 포퓰리즘의 근본적인 원인 중의 하나이며 여기에 경제위기에서 발생되는 대중들의 불만이 기존 정치세력의 정당성의 위기로 연결되고 이것을 정치적 자원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포퓰리스트적인 정치적 기술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불황과 실업으로 인해 대중들은 불안감이 증폭되고 기성정당과 정치제도에 대한 불신이 가중되며 그 속에서 선동적인 정치구호로 무장한 포퓰리즘이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포퓰리즘이 지니는 특성은 무엇인가. 포퓰리즘의 일반적인 특징은 첫째 기존 정치세력들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인민에 대한 호소를 즐기고 반엘리트주의를 표방한다는 점이다.
둘째 명확한 적을 제시함으로써 대중동원을 용이하게 한다.
세 번째로는 포퓰리즘은 선동적이며 비합리적인 유권자의 정서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불안을 야기한다고 지목되는 집단은 억압의 대상으로 표현되고 사회적 불안감이 과장되어 표현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정치적 참여의 직접형태를 선전하고 다른한편으로는 지도자에 의한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포퓰리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점이다. 즉 포퓰리즘은 표면상으로는 직접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인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듯한 외양을 쓰고 있지만, 결국은 인민주권을 포퓰리스트에게 종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결국은 대의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키고 적대세력으로 지목된 사회구성원들에 대한 적대적 배제를 시도하는 등,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게 되는 것이다.
3-1 네오포퓰리즘의 특징
서유럽의 우파포퓰리즘.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의존, 대중들의 불안감, 편견, 적개심에 호소.
특히 이민자에 대한 적대와 민족주의를 주장.
등장배경은 세계화 속에서 나타나는 양극화.
남미의 네오포퓰리즘.
기존의 포퓰리즘과의 차이는 경제정책. 즉 기존의 포퓰리즘은 보호주의를 주장했지만 현재는 신자유주의를 옹호.
대중매체는 중간 계층의 사람들과 적대적.
남미의 네오포퓰리스트들은 차베스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성과도 없다.
4. 파시즘과 포퓰리즘의 유사점과 차이점
앞서 살펴본 파시즘과 포퓰리즘의 특징을 토대로 유사점과 차이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4-1 유사점
1) 등장배경: 파시즘과 포퓰리즘은 모두 경제적 위기상황에서 대중의 불안과 기존 정치세력들에 대한 불만을 매개로 등장한다. 또한 대중동원을 통해 집권을 시도한다는 점도 공통점이라 할 것이다.
2) 특징의 유사점: 무엇보다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직접민주주의 강조)이 유사점이라 할 것이다. 또한 적대세력을 설정하고 위기를 과장한다는 점 역시 공통점이라 할 것이며 개인의 카리스마를 강조한다는 점 역시 유사점이라 할수 있다.
4-2 차이점
포퓰리즘과 파시즘은 모두 대중동원과 지지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은 포퓰리즘은 여론추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는데 반해, 파시즘은 분명한 이데올로기가 존재하며 전체주의의 모습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즉 파시즘은 대중동원을 넘어서 국가통제를 실시하는 것이다. 또한 파시즘은 공공연한 테러독재로서 이해가능하지만 포퓰리즘은 테러를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즉 전체적으로 볼때 파시즘이 전체주의 국가라고 이야기 한다면, 포퓰리즘은 그보다는 약한 국가-대중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는 배제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올해 들어 왜 히틀러(의 파시즘)를 연구하기 시작했는지 궁금해지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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