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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일본학 강의

호류지(法隆寺 : 법륭사) 찾는 이재명-다카이치 '역사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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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류지(法隆寺 : 법륭사) 찾는 이재명-다카이치 '역사 속으로'

    


“붓을 든 담징의 손끝이 무학같이 벽 앞에 나는가(飛ぶだろうか) 하면, 진하고 진한 빛이 용의 초리같이 벽면을 스쳤다.
거침없는 선이여, 그 위엔 고구려 남아의 의연한 기상이 맺혔고, 부드러운 선이여, 그 속엔 백제의 다사로운 꿈이 깃들인 속에 남국적인 정열이 어렸도다.”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정한숙의 소설 <금당벽화>의 한 장면입니다.

고국의 국난에 차마 화필을 들지 못하던 고구려 승려 담징이 을지문덕 장군의 칼 아래 수양제의 백만대군이 가랑잎같이 부서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호류지(法隆寺) 금당의 벽화를 완성한다는 내용입니다.

역사 기행(紀行)를 하는 사람들이 일본 서쪽 지방을 여행할 때면 일부러 시간을 쪼개 나라(奈良)를 찾아가는 것도 이 소설 덕분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금당벽화는 담징의 작품이 아닐 것이라는 게 중론이에요.
670년 호류지가 화재로 전소했다는 <일본서기> 기록도 있습니다. 설혹 담징의 작품이었다고 해도 재건하며 새로 그려졌을 것이란 얘기입니다.
게다가 벽화는 1949년 다시 화마로 거의 소실됐습니다.

호류지는 일본의 고대국가 기틀을 만든 쇼토쿠 태자(聖徳太子)에 의해 607년 창건된 사찰입니다. 일본의 1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지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서 국보와 중요 문화재 수백 점을 간직한, 일본 아스카(飛鳥)시대의 보물창고 같은 곳입니다.

그중 백제관음(구다라관음)이 이름부터 우리의 눈길을 끌어요. 앙드레 말로가 “일본이 침몰해서 하나만 가져갈 수 있다면 이걸 택하겠다”고 했다던 바로 그 걸작입니다.

1997년 일본과 프랑스가 국보 1점씩을 교환 전시할 때 선정됐을 정도입니다. 당시 프랑스가 보낸 건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었습니다.

구다라관음이 “백제에서 온 불상(仏像)” “백제계 사람이 일본에서 만든 것” 등 여러 설이 있지만, 호류지 자체가 이미 고대 백제·고구려인의 숨결이 깃든 곳이에요.

일본을 방문 중인 한국 대통령 이재명이 1월 14일 나라(奈良)가 고향인 日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와 함께 호류지를 찾았습니다.

양국 사이에 불행한 과거가 있지만 오랜 교류의 역사도 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였을 거예요.

갈등과 대립이 아니라 화해와 협력이 ‘역사의 올바른 편’ ----시진핑은 이재명 방중(訪中) 때 '미국 편에 들지 말고 중국 편에 붙어 미국에 대항하는 것이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는 일'이라고 이재명을 겁박했다 ---- 에 서는 것임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한국경제, jt_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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