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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일기(その日の日記たち)

<장준하 비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박정희의 천적, 그 양반 장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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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국제정치 분야 크리에이터 (칼럼니스트) ゝ 이*석(벡크) 드림.

<장준하 비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박정희의 천적, 그 양반 장준하

박정희의 천적 장준하(張俊河).

종로에는 유명한 백화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화신백화점이다. 화신백화점은 박흥식에 불하되었던 재산으로 알려졌는데,
이 화신백화점에서 2가쪽으로 조금 올라간 곳에 태화기독교회관이라는 아담한 6층 정도의 건물이 하나 자리잡고 있었다.

일제가 돌로 지은 건물이다. 여름에는 시원했고, 겨울에는 따뜻했다. 담쟁이 넝쿨 같은 것도 벽을 타고 올라갔던 모양이다. 운치 있었다. 잘 지었다는 건축가들의 평이 나돌았다.

그런데 1966년경 한 고등학교 클럽이 이곳에서 회의도 열고, 좌담도 갖고, 유명연사를 초빙하여 강연회도 열곤 했다.

즉 경기고-서울고-경복고-경기여고-이화여고-숙명여고 학생들이 3 대 3으로 비율을 맞춰 고등학고 클럽을 하나 결성, 태화기독교회관에서  만나며 내일의 꿈과 비전을 이야기했고, 달콤한 연애도 했던 것이다.

이 고교 클럽의 리더는 서울고 학생 S군였다. 당시 영등포에서 큰 공장을 갖고 있던 갑부의 아들이다.

서울고는 일제때에는 주로 일본인 자녀들이 다녔던 학교. 해방후 초명문고교로 거듭났다. 서울고의 베이지색 교복은 학생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학교가 자리한 위치도 경희궁 옆으로 명당 중의 명당이었다.  

이런 곳에서 고교시절을 보내고 있던 S군은 가문의 배경, 명문고생로서의 프라이드, 그 위에 빼어난 리더쉽으로  당시 고교생 스타로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머리도 명석한 수재였다.

이 S군이 기독교회관 건너편에 있던 종각 옆의 장준하 선생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약속을 받고 사무실로 찾아간 S군은 난데 없이 '통일문제'로 강연을 해 달라고 장준하 선생에게 요청했다.

선생은 처음에는 고등학생 앞에서는 강연해 본 경험이 없다고 하면서 정중히 거절했다.
당시 주(駐)월남 대사 등 많은 정치인들도 마침 선생의 사무실을  방문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당돌하게 찾아와서 강연을 해달라고 하니, 그것도 예민한 '통일문제'로...

장준하 선생도 무척 난감해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무서울 게 없는 그 고등학생(S군)의 끈질긴 요청으로 결국 선생은 강연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선생은 S군과의 대화에서  "너무 거북할 정도로"  존대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고교생앞에서도 선생은 존댓말을 사용했던 것이다.

드디어 어느 그날 선생은 태화기독교회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 드디어 고대했던 장준하의 사자후가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선생은 순간적으로 강연제목을 바꾸었다. 통일문제도 좋지만, 자기가 살아온 인생역정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노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결국은 통일문제도 이  장준하의 인생역정을 이야기하자면 다 포함되는 이야기이니, 청중들이 크게 불만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고교생들을 상대로 한 이 강연에, 사회 각계의 적지 않은 유명인사들이 앞자리에 앉아 자리를  같이했다고 하니, 이 부분이 선생의 인기를 실감케 해주는 대목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선생의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다. 학도병으로서 만주에서 도주범으로 쫓기는 일로부터 장준하의 대서사시는 막이 오른다.


다시 방문해 주세요. 그 동안에 글을 완성해 놓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과의 관계, JP 등 육사 8기와의 관계, 육사 5기와의 조우,  데스 미팅(Death Meeting) 등등, 현대사의 장쾌한 스펙타클이 다 나옵니다~~!!

2011-02-16 22:45:35=조인스 記


태그 : 장준하, 사자후, 장준하 비화,이제는 말할 수 있다
  

張俊河伝説を訪ねて(2012.9.1). ◯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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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국제정치 분야 크리에이터 (칼럼니스트) ゝ 이*석(벡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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