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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 Man's Blue Ocean

예수 그리스도의 박정(薄情)한 대답 -- "피도 눈물도 없는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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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국제정치 분야 크리에이터 (칼럼니스트) ゝ 이*석(벡크) 드림.


예수 그리스도의 박정(薄情)한 대답
-- 피도 눈물도 없는 사나이
-- "부자의 천국행은 낙타의 바늘구멍"


*️⃣ '예수 그리스도의 박정(薄情)한 대답'은 2011년 5월 조인스에 처음 실었고, 2013년 5월 티스토리에 재발행한 글인데, 가끔은 지금도 피드백이 오고 있는 글입니다.

금일적(今日的) 주제로도 살아 있는 테마이기에 그렇게 아직까지도 관심을 보내주고 계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지금 다시 훑어 보니 '즈이쇼(随所 : 몇 곳)'에서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발견되어, 그곳을 약간 수정하여 여기 재발행하고자 합니다.

2011년・2013년의 글 발행 때의 분위기와 상태는 기본적으로 그대로 유지시켜 놓고 있습니다.

다만 이 블로그에서 재발행함과 동시에, 먼저 블로그의 해당 포스트는 비공개 처리를 했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이 블로그 포스트를 통해서만 여러분들과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 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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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박정(薄情)한 대답 -- "피도 눈물도 없는 사나이"

종교인들에게서는, 오히려 피도 눈물도, 그리고 인간적인 면모도 전혀 발견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장례 지내러 가려는 사람에게, 인륜의 도리보다는 하늘 뜻을 전하는 일(즉 전도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매정한 대답을 했던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모(母) 마리아는, 예수가 집안일 하나 안 거들며 '공노정(公路程)'이랍시고 바깥으로만 나돌자 예수에게 좀 싫은 소리를 했다.

이에 대한 예수의 대답이 '모골이 송연해지는 천하의 희답(稀答)'이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엄청난 충격적인 대답이었기에, 필자도 차마 그대로 소개하기가 난감하다. ㅎ~!  알고 싶은 분들은 성서의 그 대목을 다시 한번 주의 깊게 읽어 보시길 바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박정하고 매정한 대답의 또 한곳의 하일라이트는 바로 다음 대목이 아닐까?

예수는 '무식한 뱃놈'이었던 베드로 등 제자들, 창녀, 세리, 거렁뱅이 등 '천박한' 무리들을 데리고 유대 땅의 이곳 저곳을 '겁도 없이' 누비고 다녔다.

예수는 어느날 하루, 부자이면서도 그래도 어느 정도 의(義)로웠던 가문의 집안으로부터, 데리고 다니던 '떼거지들'과 함께 음식대접을 받았다.

(이는 떠돌이 김삿갓이 어느 양반집에 들려 술 한잔 얻어 먹는 일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

부자라고 해서 100% 부정하고 불법을 행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극히 소수이기는 하지만 부자 중에서도 너그러운 의인(義人)은 있었다.    

예수는 남루한 떼거지들과 함께 그 부잣집에서 한번 '건하게' 식사 대접을 받은 모양이다.

자, 예수 님, 잘 드셨다면, 이제 뭐 좋은 덕담이나, 뭐 좋은 말씀이나 하나, 그 부잣집 주인장에게 해 주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 주인장도 이제 무슨 좋은 말씀을 예수께서 해 주시겠지 하면서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이 부자도 그 당시 로마의 식민지 유대땅에서 고난을 겪고 있었고, 그리고 유대땅의 전통신앙을 가지고 있었기에 '천국'에 대한 어떤 간구를 품고 있기는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예수로부터 천국에 대한 무슨 얘기라도 듣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이 무슨 '망발'이뇨? (크리스찬 분들은 이 글의 표현상 좀 과도한 부분이 있더라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

예수는 그 부자에게 딱 부러지게 단호히 힘주어 '말씀'해 버렸다.----"부자가 천국에 가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해 가는 일보다도 어려우니라!"

  

세상에, 아무리 그렇다 해도, 식사대접을 해준 그 부자 장본인 앞에서 예수는 어찌 그리도 매정한 '말씀'을 하실 수 있단 말인가? 예수는 피도 눈물도 사리도 도리도 없는 '분'이었는가?

참고로----5월 10일이 석가탄신일 (불기 2555년)로 석가의 일생을 돌이켜보는 기회가 되었지만---- 석가모니는 시주를 받을 때나 식사대접을 받을 때, 어떤 상황이나 처지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덕담이나 설법(説法)을 베풀어 주었다. 석가모니를 존경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당사자에게는 어찌도 그리 '절망적인' 송곳같은 '말씀'을 설(說)하고 말았을까? 허허~ 그 사람들의 처지조차도 파악하지 못하는 분이셨나?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요...
자, 그러면 결론을 이야기 하자. 예수는 같이 데리고 갔던 그 무리들 앞에서 그 무리들이 알아들으라고 그 때의 부자-천국-낙타-바늘구멍의 '말씀'을 설(說)했던 것으로 보인다.

제자들과 데리고 다니던 무리들의 교육의 차원에서 그리 '말씀'했던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 당시 30세 전후였던 젊은 예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수는 정말로 '똑똑했고 영특한' 젊은이였음에 틀림 없었던 것 같다. 그 대답이 보통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자기가 엄청난 경지에 올라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고, 세상과 세상의 온갖 사람들을 저 아래 차원에 두고, 가르침을 주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 '깨달은' 예수 그리스도였으니까, 그리 하셨을 테지요...^^

 

크리스찬 님들, 이 정도의 글이면 화 안 내셔도 되지요? 가령 유쾌하지 못한 대목이 있었더라도 나쁜 뜻은 없으니까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죽음의 진짜 이유에 대해서는, 그 당시 유대사회의 특성・성격을 진단하면서 언제 다시 포스팅하지요. 이래 놓고 결국 못쓰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더보기> ↓

○ 석가모니가 "혼자 깨달았다"고 '말씀'하시자, 가르침을 받으러 온 무리들이 순식간에 다 떠나..ㅎㅎ

○석가모니도, 예수 그리스도도 솔직하고 정직했다. 솔직하고 정직한 자가 결국은 오래 가고 역사에 남는다.
--석가는 '깨달은' 후에도 계속 정진.  
--인도와 인도 주변에 있던 원래 사상들.
--예수의 명답 시리즈 : 그 호도미(醍醐味=백미)에 천착해 들어간다.

○삼위일체론(성부, 성자, 성신=성령)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하나님의 아들이냐, 사람의 아들이냐
--이 부분을 바르게 이해해야 진정한 '구원'을 얻는다(해설: 벡크).  

○베드로의 무덤과 로마 교황청. 그리고 떠나가는 초기기독교 원리주의자들. 그들은 어디로 갔나...

○ 석가모니의 서바이벌 전략
--석가모니의 생애를 현대 경영학 용어, 현대판 유행어로 풀어서 설명
--인도땅과 북방의 민족들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성자' 석가모니

○'예수의 부활'에 대하여
--크리스찬에 있어서 예수의 부활이란? 부활 그리고...
--라엘리안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어찌 설명하고 있나?

@ 2011-5-12=記
    

ⓢ 정치・국제정치 분야 크리에이터 (칼럼니스트) ゝ 이*석(벡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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